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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신변을 보호하는 바티칸 근위병들은 다름 아닌 스위스 용병이다.

가난한 알프스 산속에서 식구들을 벌어먹이기 위해 돈을 받고 이웃 나라를 위해 대신 싸우며, 그 용맹함과 신의로 유명해진 스위스 용병의 전통은 바티칸 근위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근위병이 무엇보다도 지난 500년 간 교황의 안전을 엄호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2006년 그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4월 7일, 퇴역한 스위스 근위병 80여명의 행진이 시작됐다.


스위스에서 이태리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이었던 마을 벨린쪼나(Bellinzona)에서 바티칸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행구이 시작됐다. 벨린쪼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스텔그란데(Castelgrande)를 비롯한 3개의 성이 있는 이태리권 마을로, 이태리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던 의미에서 긴 행렬의 출발지로 선정된 것.

이들은 프란치제나 거리(Via Francigena)를 따라 720km를 걸어 로마에 5월 4일에 도착할 예정. 5월 6일 오후에는 신입 근위병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선서식을 갖게 된다.

 
스위스 근위병은 1505년 6월 21일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티칸 궁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히 200명의 군인을 파견해 줄 것을 스위스 동맹에 요청하면서 바티칸을 엄호하게 됐다. 첫 150명의 근위병이 그 해 가을 로마로 파견되었고, 1506년 1월 로마에 도착하게 된다. 이 도착일이 스위스 근위병의 탄생일로 지정된 것.

스위스 근위병들은 그 동안 무수히 많은 희생을 치러오기도 했는데, 실례로 1527년 5월 6일, “로마 약탈” 때 카를 5세 황제의 군대와 치른 전투에서 약 150명의 스위스 근위병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실제로 목숨을 잃은 대다수의 근위병들은 취리히 출신의 개신교 종파였음에도 교황을 엄호하겠다는 맹세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

스위스 근위병들은 이 날을 여전히 기념하며 신입 근위병들이 바티칸과 교황을 목숨을 지켜 엄호할 것을 선서하게 하고 있다. 현재 스위스 근위병은 110명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소 복무 기간은 2년이다. 교황청 거주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띄고 있으며, 교황 외출시 경호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다.

스위스 법상, 스위스 시민이 국외에서 입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단 한 가지 예외로 교황청 엄호를 위한 바티칸 근위대 입대는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치안 임무의 하나로 “중립”과 “평화”를 모색하는 스위스 자체 임무라고 보고 있다.




스위스 근위병에 관련한 몇 가지 사실.
-스위스 근위병은 최대 110명을 넘지 못한다.
-지원자는 반드시 스위스 국적을 가진 천주교인이어야 하며, 만 19세 이상 30세 이하, 신장 174cm 이상이어야 한다.
-입대시에는 미혼이어야 하나, 차후 결혼은 가능하다.
-월급은 매달 CHF 1,800이다. (환율 CHF 1을 750원 정도로 보았을 때, 약 135만원 정도)
-최소 2년간 복무해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설이 많지만, 실제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했다는 증거는 없다. 500년 전, 스위스 근위병 스스로 자체 디자인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스위스의 화폐나 여권 등 스위스는 실용 디자인이 무척 발달한 나라다.)

스위스 용병이 유명해진 역사.
1273년 알프스 산속 여러 주가 합쳐져 탄생한 "스위스 동맹"은 옛날에 부유했던 로마 제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사이에 끼어 있는 알프스 산속 마을의 가난한 작은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알프스의 고개들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독일이 부유한 로마 제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 하나의 통로였고, 이것이 스위스를 "지리적 요새"로 만들어, 주변국들이 호시탐탐 집어 삼키고 싶어하는 위치의 나라였다. 농사 지을 땅도 별로 없고, 그렇다할 산업도 없었던 스위스는 "사람"만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고, 남자들이 주변국에 돈을 받고 나가 대신 싸워주며 "스위스 용병"이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식구들 벌어 먹이려고 돈 받고 전쟁터에 나가던 직업 군인들이 바로 스위스 용병의 시초라고나 했던 것.
산악 지방에서 워낙 강단있게 살던 스위스 사람들은 전쟁에서도 매우 용맹이 있었고, 받은 돈에 대한 대가를 신뢰로 갚았기 때문에 유럽 여러 나라 왕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다.
스위스 군인이 용맹스럽고 싸움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왕들은 전쟁이 나거나 군대가 필요하면 스위스 지방 귀족들에게 군인 몇 천명을 요청하고 땅과 교환을 하곤 했다.

자료 출처: 스위스 정부관광청(www.MySwitzerland.co.kr)
스위스 근위병 공식 사이트: www.schweizergarde.org
행렬 참가 퇴역 근위병 사이트: www.schweizergarde.ch
500주년 기념 행렬 사이트: www.gsp06.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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