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09.4.15~4.28 갤러리아순수(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78-14, 전화 02-511-5167, 오프닝:4.15일 오후 7시), 2009.4.29~5.6 아트센터순수(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70-1, 전화 031-261-1957)
마교수는 시인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로 이름을 날려왔고 외설파문으로 교수직을 한때 잃기도 했다.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도덕보다는 본능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이 바로 「야한 정신」이다》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운명과의 싸움이란 결국 정신적 극기와 육체적 절제를 강요하는 전통윤리와의 싸움이요, 금욕주의와의 싸움이다. 진정한 행복은 운명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드라마틱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미’로부터 온다.》
《나는, 문학은, 또는 모든 예술은 우리의 <위압적(威壓的)인 양심>과 <격노(激怒)하는 본능> 사이에서 비폭력적 중재가 가능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시인ㆍ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1951년 서울 출생. 1969년 대광 고등학교 졸업, 197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75년 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1983년 문학박사(연세대).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장자사(莊子死)>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마광수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 중의 하나이다. 그의 긴 약력이 보여주는 것은 마광수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구속>, <해직>,<필화사건> 등의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일종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992년 10월 29일에 외설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세계 최초로 검찰에 의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동시에 구속기소된 그는 연세대에서 직위해제되고 1992년 12월 28일 1 심 판결(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로 징역살이를 끝내고 일단 석방된다. 그리고 항소와 항고를 한 결과, 1995년 6월의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되고 연세대 교수 직에서 해직된다. 그러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복권되어 연세대에 복직한다. 그러나 2000년 6월에 국문과 동료교수들의 집단따돌림으로 재임명 탈락 사건이 일어난다.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학교 당국은 탈락을 보류하지만 마광수 교수는 극심한 배신감으로 인한 외상성(外傷性)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한다. 2003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하여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에 다시 휴직하고 2005년부터 건강을 간신히 회복하고 연세대에 복직한다.
우리 사회와 학계와 문단 등이 마광수에게 혐오감을 갖는 것은 마광수의 생각이 가지는 일종의 <솔직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마광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발언한다. 이것의 그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로 인해서 옥고를 겪거나 했지만 마광수는 유난히 많은 문제를 겪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화제와 비난의 대상이 되자 연세대는 그의 강의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외설로 구속되는 황당한 사건을 경험하기도 하고, 유죄 확정 판결로 직장에서 파면되어 경제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또 마광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사라는 결코 즐겁지 않았다>, <마광수의 야한 여자론 비판>, <섹스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 등)들이 출간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마광수는 행복한 저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이 마광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책을 써냈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옳다>, <마광수 살리기>) 사회적 논란을 가져온 많은 저자들이 있었지만 그를 옹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내기까지 한 일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마광수는 옹호자를 가진 행복한 저자이다.
마광수가 이름을 알린 것은 분명히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발언들이다. 그러나 그 주제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마광수는 한국 사회가 가지는 <관용의 정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하는 일종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보통 음습한 곳에서만 이야기되던 개인의 성적 취향을 사회의 토론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마광수에 대한 비판의 주된 근거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 마광수는 자신만의 주제와 글쓰기 스타일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주요한 논제가 아니라고 보여진다. 마광수는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생각이 없으며, 동시에 한국 사회 또한 마광수에 대한 비판을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 경향】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억압된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회복하려는 열망을 독창적인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일사후퇴 당시 피난 도중 태어났다. 종군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반권위주의적 성향은 부권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평도 있다. 결국 양반 가문이 아니며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있어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거리로 작용한다는 점은 그의 타고난 반골 기질과 반(反)권위주의를 입증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의 집안이 몰락한 것은, 예컨대 이문열의 경우처럼 이데올로기 갈등의 틈바구니나 피튀기는 권력관계에서 희생된 게 아니라, 주변부에서 어이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의 핏속에 어떻게든 딛고 일어서려는 오기 섞인 불씨를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사랑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강하고 합리적인 홀어머니의 너그러운 치마폭에서 홀홀이 자라났다. 그리고 이것은 그로 하여금 아무런 권위도 내면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권위에 대해서도 진실로 무심한 독특한 성향을 빚어내게 한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정착, 병약하고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다. 독서를 즐겼으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미대와 국문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다 국문학과로 진학, 재학 중 학과내 연극부를 창설했고, 교내방송국 PD, 교지 기자, 연세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약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최초의 마당극 <양반전>을 각색, 연출했다.
1989년에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소설 <권태>를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합류, 「마광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성에 관한 사회의 위선과 이중잣대에 도전하는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그가 펼치는 성애적 상상력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인간론 3부작이라 칭하는 에세이집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성애론> <인간>에 따르면, 「야한 정신」은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인 보편성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관념보다는 감성에, 명분보다는 실리에, 교조주의보다는 다원주의에, 도덕보다는 본능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으로의 변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의식의 변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가 펼치는 문학이론 역시 독특한 만큼이나 도발적이다. 감동이란 무의미한 관념적 세뇌일 뿐이고, 페이소스는 애상감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을 지켜보며 즐기는 사디즘이며, 카타르시스는 정화가 아니라 대리배설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섹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핥고 빤다.」
<권태>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 전래의 기담소설 분위기를 풍기는 연작소설 <광마일기>에 이어, 성적 일탈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주인공을 그린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에 휘말린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 사건과 유죄판결을 보는 시각은 이렇다. 「정상인 것을 불온하다고 낙인찍는 사회는 불온한 사회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후 그의 성의식 비판은 한국사회의 「모럴 테러리즘」에 대한 비판으로 그 강도를 높였다. 그에게 성은 이제 「쾌락에 관련된 문제도 아니요, 윤리에 관련된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인권에 관련된 문제다.」
또한 그는 확정된 <진리>에 대한 미신적 믿음과 신념을 버리고 자유로운 사고(思考)의 유연성을 갖자고 주장하면서, 평생 동안 어린애 같이 솔직한 <야한 정신>을 갖고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리와 자유>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가 말했다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은 좀 이상해/어떻게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어?/진리는 오히려 폭력, 권력, 도그마가 되기 쉽지./역사를 보면 진리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 예가 더 많지./중세기의 마녀 사냥도 그렇고 종교 재판도 그렇고/ 십자군 전쟁, 이교도 학살, 히틀러의 유태인 씨말리기 같은 것도 그렇고/지금껏 자행되는 성의 억압이나 도덕적 테러리즘 등이/모두 다 <진리>의 이름으로 행해졌지.//그러니까 이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아니라/<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되어야 해./자유가 모든 가치에 선행되어야 해.」
마광수에게 있어 문학은 「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꿈꾸기 」이다. 마광수는 문학은「상상력의 모험」이며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한다. 문학은 도덕적 설교가 아니고, 당대(當代)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계몽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은 기성 도덕에 대한 도전이어야 하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요,「창조적 반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광수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외롭다>고 말한다. 참된 문학은 당세풍(當世風)의 기득권 윤리에 대한 반발이므로 창조적 문학인은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광수에게 있어 「창조적 작가」는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의 창조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을 제시하는 작가다. 작가가 기존 사회의 지배적이고 유용한 가치에 봉사하는 자세로만 일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마광수는 현 사회의 지배적이고 유용한 가치가 정말 옳은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책임이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정말 알고 있으면서 믿는 것인지, 왜 믿는지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눈으로는 기성 도덕과 기성 가치관에 추종하여 스스로 「점잖은 교사(敎師)」를 가장하는 것은 작가로서 가장 자질이 나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은 훈도(訓導)하여 순치(馴致)시키는 도덕 교과서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문학이 근엄하고 결벽한 교사의 역할, 또는 사상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되고 만다고 말한다. 문학은 상상적 허구의 세계를 통해 그 어느 것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꿈속에서 강간을 하거나 살인을 했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욕하거나 단죄할 수 있을까? 또 그런 꿈을 꾸고 난 사람이 꿈에서 깨어난 후 곧바로 살인이나 강간을 실제로 저지를까?》라고 반문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경직된 문화풍토는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고 허구와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문학은 그 안에 사상적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무언가 「고상한 것」이어야 하고, 일종의 권선징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답답한 엄숙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경직된 엄숙주의에 따른 경건주의와 도덕주의의 만연은 우리 문학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세계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결국에 가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만든다. 아직도 대다수의 보수적 문학인들은 문학창작을 봉건시대 때나 있었던 과거시험 답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때는 <문장>으로 정치적 자질을 테스트했고, 문장을 잘 쓰면 금세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장의 내용은 무조건 유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므로 마광수에게 있어 문학의 참된 목적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이요, 창조적 일탈(逸脫)이다. 문학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본능적 욕구들을 리얼하게 드러내어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참된 가치를 지닌다. 사상이나 도덕 따위는 철학책이나 윤리책에 그 소임을 맡기면 된다. 마광수는 교양서나 교훈서로서의 문학이 앞으로는 절대로 문학 취급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문학적 엄숙주의와 양반의식을 증오한다. 마광수는 <육체주의 문학>을 내세우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문학은 전통적으로 엄숙주의를 전제하여 발전해왔다. 시대를 불문하고 지식은 권력이었고 다른 문화생활과는 달리 문학은 식자층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특권이었다. 부유한 식자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값비싼 취미생활이자 정신적 우월감의 표출이 곧 문학이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넓어진 독자층에도 불구하고 지적(知的) 허영심을 위해 포장되는 글들만이 아직까지도 신성한 본격문학으로 존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중적, 즉 육체적 쾌감(관능적 카타르시스)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귀족적, 즉 정신적 쾌감만이 <카타르시스(대리배설)>가 아니라 <감동>을 준다고 주류문학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육체주의 문학만이 진정한 문학이라고 보아 그것을 실천한다. 우리나라 문화계는 도무지 자유로운 개성과 돌출적 변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양반주의나 훈민주의(訓民主義)의 문학관이 당연시 되고 있고, 독창적 광기나 솔직한 노출은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고 있다. 보다 민중적인 대중문화와 <하수도 문화>에 대한 턱없는 멸시와 탄압은 그런 수구적 봉건윤리에 기인한 문화적 후진성에서 비롯된다』
마광수의 문학과 철학에 찬동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도 많다. 마광수를 탄압하는 기성 지식인들에 대한 그들의 항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 마광수 필화 사건에서 재미있는 점은 서로 적대적인 양극의 대응이 동일한 양태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광수가 모럴 테러주의자라고 말하는 수구적 보수주의자들이 성의 문제에 대해서 극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왜냐하면 그들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옭아 매고자 하는 봉건 세력들이니까. 하지만 愍??가치를 신봉하는 진보주의자들마저 마광수에 대해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그 토대가 빈약한가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은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하고 금욕적인 선비상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개방적이고 문란한 프랑스 사회는 한국보다 덜 진보된 사회라는 걸까? 혁명가들은 색을 밝혀서는 안 되며, 진보주의자는 모두 금욕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걸까?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에술이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외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위선적이거나 아니면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다.」
또 어느 젊은 문학인은 마광수가 자주 쓰고 있는 <한국문학의 전근대적 촌티>라는 말을 원용해 이렇게 말한다. 「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자마자 마 교수의 <즐거운 사라>를 읽으며 구역질을 했다고, 당시 한국의 최고 작가라는 칭송을 들았던 이문열이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것.....그리고 지금도 마광수의 소설과 시는 지식인 사회와 문단에서 <차가운 감자> 취급을 받고 독자들 역시 그의 책들을 흡사 빨갱이 책 보듯 한다는 것.... 이런 낮과 밤이 다른 이중적 성관념에 바탕을 둔 마녀사냥은, 한국의 기득권 문학인들이 만들어놓은 선입견 때문이고, 그 기득권 문학인 중엔 민중문학의 고수들이(예컨대 평론가 백락청 씨 같은) 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한국문학의 저열한 <문화적 촌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 교수 조종혁은 “마광수 교수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지녀온 ‘교육의 신화’를 전면 거부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신화의 거부 ---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모든 사회적 지탄과 비난과 억압의 이유였다. 그러나 신화의 거부, 신화의 파괴는 언제나 새로운 의미의 장을 연다. 그것은 새로운 현실구축의 가능성을, 새로운 출발점을 시사한다. 마 교수는 이 땅에 전인교육의 신화를 엮어온 기존의 상징체들, 즉 ‘대학’, ‘권위’, ‘지성’, ‘윤리’, ‘교수’, ‘학자적 양심’ 등의 의미작용에 더 이상 귀기울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그가 쓴 여러 소설과 시 등을 매체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과연 대학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반사회적인 교수인가?」
또한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마광수 교수에 대해 「그는 머지않아 <시대를 앞서 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에 대한 <마녀 사냥>이 한창 진행되던 때로부터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했던 주장은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평가했다.
1951년 서울 생
청계 초등학교 졸업(1963)
대광 중고등학교 졸업(1969)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1973, 문학사)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75, 문학석사. 1983, 문학박사)
연세대, 한양대, 강원대 등 여러 대학 강사 역임 (1975--1978)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 역임 (1979--1983)
현재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1984--1995, 1998--현재)
문학이론서
1984 [윤동주 연구] 철학과 현실사
1985 [상징시학(象徵詩學)] 철학과 현실사
1986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청하 출판사
1987 [시 창작론] 방송통신대학 출판부
1987 [마광수 문학론집] 청하 출판사
1997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철학과 현실사
1997 [시학(詩學)] 철학과 현실사
2001 [문학과 성(性)] 철학과 현실사
2006 [삐딱하게 보기(문학론집)] 철학과 현실사
2009 [연극과 놀이정신] 철학과 현실사
시집
1980 [광마집(狂馬集)] 심상사
1985 [귀골(貴骨)] 평민사
1989 [가자 장미여관으로] 자유문학사
1997 [사랑의 슬픔] 해냄 출판사
2006 [야하디 얄라숑] 해냄 출판사
2007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시대의 창
에세이집
1989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자유문학사
1990 [사랑받지 못하여] 행림 출판사
1992 [열려라 참깨] 행림 출판사
1998 [자유에의 용기] 해냄 출판사
2005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해냄 출판사
2006 [마광쉬즘] 인물과 사상사
2007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철학과 현실사
문화비평집
1991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사회평론사
1994 [사라를 위한 변명] 열음사
2007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도서출판 새빛
2008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에이원 북스
철학적 전작에세이
1997 [성애론(性愛論)] 해냄 출판사
1999 [인간] 해냄 출판사
2005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오늘의 책
소 설
1990 [권태](장편소설) 해냄출판사
1990 [광마일기(狂馬日記)](연작소설) 사회평론사
1992 [즐거운 사라](장편소설) 청하출판사
1996 [불안(不安)](장편소설) 리뷰 앤 리뷰(문학동네)
1998 [자궁 속으로](장편소설) 사회평론사
2000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옴니버스소설) 해냄출판사
2005 [광마잡담(狂馬雜談)](연작소설) 해냄출판사
2005 [로라](장편소설) 해냄출판사
2006 [유혹](장편소설) 해냄출판사
2008 [귀족](중편소설) 중앙 BOOKS
2008 [발랄한 라라](단편소설집) 평단문화사
마광수 관련 서적
1995 [마광수는 옳다] 연세대 국문학과 학생회 쓰고엮음, 사회평론사
2003 [마광수 살리기] 강준만 외 6인 지음, 중심 출판사
참고 사건(<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1991년 8월 25일 <즐거운 사라> 첫판을 서울문화사에서 출간
1991년 9월 10일 <즐거운 사라>가 판매금지 됨
1992 년 8월 28일 <즐거운 사라> 개정판을 청하출판사에서 출간
1992년 10월 29일: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의해 전격 구속됨(외설소설 구속은 세계 최초임)
1992년 10월 30일: 문화부에 의해 <즐거운 사라>가 판매금지됨
1992년 12월 28일: 1 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 받음
1993년 2월 28일 : 연세대학교에서 직위해제됨
1994년 5월 1일 : <즐거운 사라> 일본어 판이 번역 출간되어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됨
1994년 7월 13일 : 2 심(항소심)에서 항소 기각 판결 받음
1995년 6월 16일 : 3심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 판결 받음(유죄확정)
1995년 6월 17일 : 연세대학교에서 해직됨
1998년 3월 13일 :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됨
1998년 5월 1일 : 연세대학교 교수로 복직됨
(자세한 사건 전말과 재판 기록은 <마광수는 옳다>(사회평론)를 참고할 것)
2007년 4월 10일 : 마광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벌금 200 만원 형을 판결 받음.
전시회
1991 [마광수,이목일,이외수,이두식 4인의 에로틱 아트 전] 나우갤러리, 서울
1994 [마광수 개인전] 다도화랑, 서울
2005 [마광수, 이목일 전] 거제 예술회관, 거제 (1월)
2005 [마광수 미술전] 인사갤러리, 서울 (6월)
2005 [마광수 미술전] 대백플라자 갤러리, 대구 (7월)
2006 [마광수, 이목일 전] 롯데마트 화정점 로비, 일산 (2월)
2007 [색(色)을 밝히다 전(展)] 북스 갤러리 서울 인사동 (1월)
2007 [마광수 개인전] 미국 뉴욕 Maxim 화랑 (6월)
2009 [마광수展] 갤러리아순수, 서울 청담동(4월)
2009 [마광수展] 아트센터순수, 용인 성복동(5월)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촌1동 중앙 하이츠 A동 402호(우:14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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