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숱한 규제 조항을 철폐하고 투자자 보호 조치를 강화한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09년 2월 4일 공식 발효된다.
자통법은 은행과 보험을 빼곤 기존 금융산업 내 주요 업종 간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었다.
하지만 은행·보험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419개의 금융사를 거느린 막강한 금융투자업종의 탄생으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적자생존 위한 무한경쟁 돌입=금융투자사에는 증권, 자산운용, 선물, 종금, 신탁 등의 업종을 모두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 자동 부여된다. 하지만 해당 회사의 전문성을 고려해 일부 업종만 선택한 뒤 집중 육성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미진출 영역 진입은 물론,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몸집 키우기도 예상된다.
금융투자업 진입 장벽이 대폭 낮아져 신설사 설립이나 기존 업체 인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엔 법령에 적힌 상품만 팔 수 있었지만, 자통법은 무제한 개발과 판매를 허용한다. 상품 개발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게다가 금투사들은 이르면 6월부터 은행처럼 지급결제업무까지 취급하게 된다. 은행들이 양보 없는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보성 한국증권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대형사든 중소형사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도 최근 “자통법 시행 3∼4년 후 증권업계는 종합증권사 3∼4개와
몇 개 특화증권사로 업계가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펀드도 반품할 수 있다=자통법은 투자자 보호 장치도 대폭 강화했다. 계약 해지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자와 펀드 등에 따른 계약을 체결한 투자자가 계약서류를 교부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실물상품의 반품 제도와 비슷한 성격이다.
금융투자회사가 투자 성향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권유하거나 금융투자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손해를 봤다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자통법은 이 같은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 추정액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 추정액은 투자자가 해당 금융투자상품을 취득한 데 따른 지급총액에서 해당 상품 처분 등을 통한 회수 가능 금액을 뺀 것이다.
불완전판매를 증명하려면 자신의 투자 성향을 알아둬야 한다. 금투사는 고객이 기재한 위험 선호도 평가 결과에 따라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 5개 유형 중 투자 성향을 분류해야 한다.
한편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선물거래소는
‘한국거래소’로 이름이 바뀐다. 증권업협회는 자산운용협회와 한국선물협회를 흡수·통합한 ‘한국금융투자협회’로 재출범하며 증권예탁결제원 역시
‘한국예탁결제원’이란 새 간판을 단다.
홍진석 기자 gija@segye.com 블로그 www.gija.info
자통법이 발효됐지만 준비 부족으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자통법은 지난 2007년 7월 제정된 뒤 1년 6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지난달 13일에야 국회를 통과한데다 시행령 개정안마저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골격은 마련됐지만 직원과 고객들이 접하게 될 시행세칙들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일선 창구에선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선 자통법의 핵심사안이었던 지급결제 허용이 은행권과 증권업계 간의 마찰로 인해 6월 이후에야 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고객들이 직접 체감하는 증권사들의 ‘투금사 업그레이드’는 하반기에 들어서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증권사 역시 자통법에 적합한 조직 개편 등에 나서야 했지만 일부 대형사를 빼곤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보호 강화 규정 역시 큰 그림은 마련됐지만 세부항목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일반투자자는 물론 금융상품 판매인력마저 자통법 환경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당장 증권, 부동산, 파생상품으로 구분된 판매사 자격시험이 자통법 시행 이후로 늦춰졌다. 임시변통으로 기존자격증을 인정해주기로 했지만 그것도 5월까지 한시적이다. 그간 증권사들이 자통법 홍보에 소극적이어서 고객들도 뭐가 달라졌는 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 실무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강화로 인해 많은 규정이 고쳐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투자자들이 당분간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본격 시행이 다소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금융사와 충분히 협의해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과도기에 국내업체보다 외국계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더 늘리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외국계 회사들이 국내
금융사들보다 파생상품을 비롯한 복잡한 금융상품 개발과 운용에서 노하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능력과 투자자보호장치에서도 외국계가 앞서고
있는다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홍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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