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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를 기억하십니까.
1970년대 성탄절 시즌때면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재개봉을 하더라도 수많은 관객들이 몰렸던 명화입니다. 1959년에 미국에서 개봉한뒤 1960년에 국내에서 첫개봉했던 영화였습니다.
저 역시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시절인 1972년쯤 처음 이 영화를 봤던 것 같습니다. 물론 DVD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워너홈비디오에서 (2005년11월)11일 SE(Second Edition)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우선 벤허 SE버전의 보도자료를 옮겨봅니다.
이어 1960년 무렵 그 영화를 관람한뒤 영화평도 담았습니다. '사상계'란 잡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사상계는 최근 'e-사상계(http://www.esasangge.com)란 온라인판으로 복간됐고 오프라인 복간도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저의 아버님은 대학시절 사상계 애독자이셨습니다. 어릴 적 아버님 서재에 빼꼭히 꽂혀있던 월간지 사상계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950~7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살펴보고 당시의 명문장을 되새겨 보기위해서는 e-사상계(www.esasangge.com) 홈페이지 방문도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고전명작 <벤허>워너홈비디오코리아 11월11일 DVD출시
워너홈비디오코리아(www.whv.co.kr 대표 이현렬)는 가을에 어울리는 고전명작 <벤허>를 11월 11일 DVD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재창조된 <벤허>는 당시로서는 영화사상 최고의 규모로 만들어진 대작이었다.
1500만불이라는 제작비와, 10년간의 제작기간, 10만여 명이 출연 인원이라는 숫자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지금의 와이드 스크린보다 훨씬 가로 비율이 긴 2.75:1 시네마스코프 사이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화면에 이 어마어마한 숫자들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 그래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이미 2001년에 <벤허>가 DVD로 출시된 바 있지만, 이번에 4Disc SE버전으로 재출시되는 <밴허 SE> DVD는 영화의 규모에 어울리는 스펙을 자랑한다. 1, 2disc에는 3시간 40분이 넘는 본편이 우수한 화질과 사운드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고, 여기에 주인공이었던 벤허 역의 ‘찰튼 헤스턴’과 역사학자 ‘진 해처’의 꼼꼼한 코멘터리가 담겨있다. 게다가 고대 서사시를 영화화한 만큼 영화음악 또한 웅장함이 그지없는데 이 음악만을 배경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별도의 사운드 트랙이 수록되어, 영화 <벤허>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벤허>는 19세기 후반 ‘루 웰러스(Lew Wallace)’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지금까지 총 4번에 걸쳐 영화와 되었다. 1907년에 단편 무성영화로 처음 만들어졌고, 1925년에는 ‘프레드 니브로(Fred Niblo)’ 감독에 의해 140분 장편으로 만들어진 무성영화가 탄생했다. 이 무성영화는 59년도의 <벤허>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완성도와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대작이다. 그리고 2003년에 ‘찰튼 헤스턴’이 목소리 연기를 한 애니메이션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이 세번째 디스크에는 1925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가 온전하게 복원되어있다. 칼 데이비스(Carl Davis)의 음악이 담긴 버전으로 총 상영시간이 142분58초에 이르며,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대작이다. 59년 영화와 스토리는 거의 유사하고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예수의 모습을 더 많이 담아서 보다 성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벤허’가 노예로 끌려간 해상 전쟁 장면이나 마차 경주 장면은 그 규모 면이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에서 결코 요즘의 영화들과 비교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장면들을 보여준다.
4Disc에는 1959년 <벤허>와 관련된 다양한 부가영상들이 담겨있다. 1994년도에 제작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Ben-Hur: The Making of an Epic]와 2005년에 다시 제작된 메이킹 다큐멘터리 [Ben-Hur: The Epic That Changed Cinema]가 각각 1시간 분량으로 담겨있다. 이 두 영상만으로도 <벤허>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사라질 것이다. 생존 당시 윌리엄 와일러 감독(1902~1981)의 인터뷰 영상 포함, 리들리 스콧이나 조지 루카스와 같은 현존하는 미국의 명감독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당시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화면이 풍부하게 편집되어 있다. 이 밖에 [Ben-Hur: A Journey Through Pictures]는 일종의 영상화보집으로서 <벤허>의 명장면들을 약 5분 정도 분량으로 아름답게 편집해 놓았다. 당시 배우들의 스크린 테스트를 한 30분 가량의 기록영화과 아카데미 11개 부분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던 1960년 제 3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면, 그리고 <벤허>와 관련된 각종 뉴스릴 자료 영상, 개봉전 티저 예고편에서부터 69년 70mm 필름으로 다시 만들어진 예고편까지 총 5가지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학자 진 해처는 본편 코멘터리를 시작하면서 주인공 ‘유다 벤허’가 실존인물인가? 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 뒤 본격적인 코멘터리에 들어간다. 그는 단호하게 유다 벤허가 가상의 인물임을 밝힌다. 단지 그는 화려했던 과거사의 증인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이다. 즉 ‘유다 벤허’는 ‘루 웰러스’라는 소설가에 의해 탄생한 인물이고, 로마 제국 시대에 핍박 받던 유대 민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기 26년, 로마 제국 시대. 유다 벤허는 예루살렘의 제일가는 유태 귀족이었다. 어느날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해오는데, 신임 총독 일행에 주둔 사령관으로 벤허의 옛친구인 메살라도 함께 온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로 변해 있었다. 다음날 신임 총독의 부임 축하 행진 중에 벤허의 여동생의 실수로 기왓장이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유대인의 계획적인 사고로 보고 메살라는 무고함을 알면서도 벤허 가족을 잡아들인다. 결국 어머니 미리암, 누이 티자, 연인 에스터는 감옥에 보내지고 재산은 몰수당한 채, 벤허는 노예로 팔려간다.
그로부터 5년 후 벤허는 로마의 함선에서 노를 저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벤허가 젓는 배가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침몰하게 되는데 이때 벤허는 함대 사령관 아리우스 제독의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제독의 양자가 되고 로마의 시민으로 신분이 복귀된다. 그로부터 다시 5년 후 로마의 귀족 생활을 하던 벤허는 가족의 소식을 알아보던 중 이스라엘로 돌아와 홀로 집을 지키던 에스더와 재회한다. 이제 벤허는 메살라에 대한 복수를 실천하고자 한다. 유태인과 아랍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가운데 벤허는 메살라와 함께 전차 경주에 출전한다. 드디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차 경주가 시작되고 결국 메살라의 전차는 뒤집히고 벤허가 승리한다. 메살라는 죽음에 직면해서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려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골짜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문둥이 골짜기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간 벤허의 슬픔 앞에, 예수님이 나타난다. 하지만 로마군은 예수를 처형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 형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에게 물을 갖다 주던 벤허는 오래전 그가 노예로 팔려가던 중 나사렛에서 그에게 물을 떠주던 사람임을 알고 놀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자 갑자기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기적이 일어난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깨끗이 나은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예수의 탄생과 함께 했고, 영화의 끝은 예수의 희생을 통한 기적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이 거대한 서사시는 모두에게 행복을 돌려주며 성스러운 의식으로 막을 내린다.
벤허 SE(Ben-Hur SE), 윌리엄 와일러 감독, 찰튼 헤스턴, 스티븐 보이드, 잭 호킨스 외 주연, 1959년 제작, 수록시간 본편 222분 + 스페셜 피쳐 5시간 30분, 전체 관람가, 오디오 Dolby Digital 5.1 – 영어 / Dolby Digital mono –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화면2.76:1 아나몰픽 (시네마스코프 사이즈), 언어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자막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중국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디스크 Dual layer / 1side / 4disc, 40,700 원,
영화평 1960년 무렵으로 추정 'e-사상계(www.esasangge.com)에서 인용!
잃어버린 ‘그 무엇’의 향수(鄕愁)
선우휘
출생 : 1922년 1월 3일 (*사망)
직업 : 전 소설가, 전 신문인, 전 군인
소설 ‘벤허’를 읽은 것은 17, 8세 때니까, 벌써 20여년전의 일이다. 나의 기억(記憶)은 어느 유태귀공자(猶太貴公子)의 모험담이라는 그런 정도(程度)의 희미한 것인데 이제까지 인상적인 대화 하나만은 외고 있은 셈이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가레’선의 노예인 ‘벤허’에게 함대사령관이 묻는다. ‘너는 이 배에 온지 얼마나 되느냐?’ ‘벤허’는 대답하기를 ‘너로서는 1년이지만 나에겐 100년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니까 그런 대화가 없다. 아마 다른 소설의 대화를 착각한 듯싶은데 앞으로 소설을 얻으면 유념해 볼 생각이다.
소설원작자는 남북투쟁 당시의 장군 류원레스. 감독은 윌리암 와일러- 이 사람의 영화는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를 본 한에 있어서는 도무지 태작(駄作)이라는 것이 없는 만치 70mm대형 영화 라기도 하여 적이 기대를 두었던 것이지만 정말 압도당하고 말았다. 먼저 느낀 것은 소설이 이쯤 영화화 되면 후작자로서 만족 이상의 만족일 것이라는 것과 문자로만 표현하는 소설이 앞으로 종합예술(綜合藝術)의 영화를 당하기 어렵겠다는 것,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긴 하겠지만 영화 ‘벤허’는 미국영화예술 능력의 집대성이며 그 과시(誇示)인 듯싶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 가지 탈이 생긴 것은 다른 내외영화들의 인상이 희미해지고 감명도(感銘度)가 적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 애 같은 나의 놀라움을 고백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하여튼 대단한 영화다.
그리고 한 가지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서구문화권(西歐文化圈)의 예술(藝術)에 있어서의 기독교적(基督敎的) 영향이다. ‘벤허’영화가 나를 압도한 것은 대형 스크린도, 입체적 음향효과도 전차경기장면이나 해전장면의 스펙터클이라기보다 영화의 테마이며 스토리의 밑에 깔린 그 흐름이다. 주인공 ‘쥬디, 벤허’는 세속적인 예수 그리스도로 그려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벤허’의 출생이 예수의 성탄과 거의 같으며 이야기는 예수가 나서부터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의 33년간의 벤허의 반생이다.
그 동안 ‘벤허’는 세 번 예수를 본다. 처음은 사막(沙漠)의 죽음의 행진 끝에 나사렛에서 예수로부터 물을 얻어먹고 영감(靈感)을 얻어 삶의 힘을 되살릴 때, 둘째는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을 계곡(溪谷)에서 보고 돌아가다가 먼발치로 ‘산상수훈’ 직전의 예수를 볼 때 그리고 세 번째 마지막으로 비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가는 예수에게 벤허가 한 모금의 물을 바치려 한 때다. 함대사령관이 해전 전 ‘벤허’의 발에서 쇠사슬을 풀어 준 것도 결국(結局) 예수의 은총(恩寵)으로 그려져 있다.
‘멧사라’와의 대결전에도 ‘벤허’는 신에게 기도(祈禱)를 드리고 로마의 폭력에 대한 피의 복수의 맹세도 십자가위에서 남긴 예수의 ‘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나니’의 한마디로 말미암아 승화(昇華)되어 마음의 평화와 어머니와 여동생의 문둥병 완유(完癒)이란 기적(奇績)을 얻게 된다. 영화 ‘벤허’가 나를 압도한 것은 전편에 풍기는 너무도 강력한 종교적 에스프리다. 벤허가 두 번째 ‘레푸라 계곡(溪谷)’을 찾아 그 어머니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고 동혈 속에서 죽어가는 여동생을 포옹하는데 이르러서 나는 조금 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현대의 지성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이적을 일소에 부칠는지 모르지만 나는 벤허와 그의 모자와 ‘에스터’가 지닌 무구(無垢)한 신앙심(信仰心)이나 그들 사이에 얽힌 무상(無償)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문둥병조차 문제가 안 된다는 뜻에서 이적이 나타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 가지 ‘벤허’를 보고 나 자신을 돌이켜 실감을 느낀 것은 ‘벤허’와 ‘멧살라’ 간에서 볼 수 있는 우정의 진실성과 그 한계라 하겠다. 로마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죽마지우인 ‘멧사라’에게 진정한 친구로서 ‘벤허’가 그에게 준 말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라’고 한 권고(勸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친구에게 그런 솔직한 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영화 ‘벤허’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서서 다루고 있는 것이 더욱 좋다. 여기에는 묘하게 왜곡되지 않은 의젓하고 맑고 거룩한 인간정신이 약동(躍動)하고 있고 인간의 참된 기쁨과 참된 슬픔이 있다. 현대인이 잊어버린 귀중한 ‘그 무엇’을 이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보는 이들은 아마 거기 하나의 향수를 느낄는지 모른다.
산만한 감격
신정현
‘남태평양’이 한국최초로 수입된 70mm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인가 하고 관람하고 나오다가 ‘벤허’의 예고를 보고 퍽 구미가 당겨 그 한국개봉을 기다렸다. 그것은 ‘남태평양’에서 놓쳐버린 70mm에 대한 어딘가 엉성한 공허감을 11개의 아카데미상을 타고 또 각국 저널리즘이 열을 올렸다는 ‘벤허’에서 메워 보려던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막상 그 영화가 들어 왔지만 워낙 관람표가 비싸 망설이던 차에 졸라대는 아내의 허영심에 자극된 바 없지 않아 드디어 구정에 그 역사적 관람의 용단을 내렸다. 6분간의 관현악이 허여멀건 스크린 뒤로 무슨 오페라의 서곡처럼 울려 나온 뒤 영화가 시작이 되었다. 아주 장중하게.
예수와 동시에 태어난 ‘벤허’라는 대 귀족의 수난사를 그리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수난사가 지배민족인 로마의 웅장한 문화와 대조되면서 전개되어 간다는 점이다 서양에 뚜렷한 두 개의 정신적인 유산인 헤브라이즘과 그레시아로부터 맥맥히 내려와 계승되는 소위 헬레니즘을 화면에 병치하면서 족히 ‘벤허’라는 피지배민족(被支配民族)의 영혼의 수난사에서 예수를 낳은 헤브라이즘의 장엄한 종교미를 부조(浮彫)했다는데 우선 감탄했다.
그리고는 신성불가침의 성역(聖域)에 자리 잡은 기독교나 예수의 권세를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음미해 보는 듯한 관점이 퍽 마음에 들었다. 예수의 이 세상 방문은 아마 인간적인 종교를 그리고 지나친 형식주의에서 인간을 해방하고자 온 것이라고 믿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퍽 공감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발이 영원히 토지에 놓인 로마, 그 머리가 하늘로만 향하던 헤브라이의 두 문화권을 비교한다는 묘미가 있으되 종교의 인간해방을 넌지시 보는 이 영화가 70mm라는 최대의 화면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는 문외한이라도 감지할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영화에서도 어딘가 공허가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왜 그럴까? 그 격렬한, 해전, 전차경주(戰車競走)의 박력, 벤허의 모자가 나병환자가 되어 동굴에서 헤매는 비극의 처절함. 섹스피어나 고전비극의 장중미(壯重美)를 방불케 하지만 예수 부활을 상징하는 성극(聖劇)같은 말미의 경건함 등 제 장면이 필생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며 문외한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지만, 문제는 그러한 비극 또는 로멘스가 편편인 채 따로 따로 가슴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결국 어느 하나의 뚜렷한 감회를 향해 깊이 그리고 침착하게 끌고 나가서 우리를 헤어나기 어려운 정신적인 질곡에 예속시키는 (대개의 명작 영화에 대해 우리가 비라는) 마력이 약하고 또 분산적이었다는 결론이 되고 말 것이다. 아마 그것은70mm 라는 점이 갖는 장단점에 기인한다면 지나친 독단일까? 영화가 자꾸 현대에 와서 종횡 늘어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텔레비전의 위협 때문이라고 한다. 전차나 해전등(海戰等)이 커다란 화면에서 반드시 그 효과가 살고 안 살고는 영화제작인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커다랗다는 화면의 이유만으로도 어느 정도 곡선의 경사각은 정해진다고 보면 어떨까?
그 아기자기하고 가슴을 쳐 흔들어 놓던 흑백영화만큼 감격적인 것을 아직 와이드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으니 이것은 필자가 유독 시대에 떨어져 그런 탓일까? ‘벤허’의 로맨스 장면에 특히 신경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과연 대형영화에서 인간의 미묘한 감정의 디테일-(연애는 특히 밤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기 때문에)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있느냐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은 허전하고 삭막했다.
결국 ‘벤허’는 스펙터클이 있고, 스릴이 있고 기적이 (이것은 와이드스크린의 장점) 비극이 있고, 로맨스가 있고 하니 현대영화가 갖출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다 간직하고 있으되 감독의 능력 부족인지 (건방진 표현이지만), 혹은 스크린 자체의 속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뒤따르는 공허감을 면할 길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벤허’의 수난이 너무나 다난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서양의 정신적 유산인 두 개 문화의 대결에 더 초점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건방진 망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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