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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70년대 문답이 블로그에 있어서 저도 한번 60년대생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1.무선리모콘 없는 흑백TV를 아시나요?
집집마다 TV는 커녕 마을하나에 TV한대에도 감사했다.
1973년 32년전이다. 금성 흑백TV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국민학교(요즘 초등학교 ) 4학년때다. 그전까지는 만화가게에서 동네아이들하고 옹기종기 모여 TV를 봐야했다. 당시 인기TV만화 프로그램은 황금박쥐,아톰,요괴인간 등등 모두 일본만화였다고 후일 들었다.
2. 400원짜리 전축판을 기억하시나요?
중1때 입학선물로 받은 천일사의 스테레오 카세트 레코더. 4만8000원. 요즘에는 줘도 사양할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물론 아버지 전축에서 녹음한 테이프가 약간. 대부분은 FM라디오를 녹음해 들었다. 처음에는 진추하의 원서머나이트로 시작했지만 아바, 존덴버,이글스,에어로스미스,비지스,레드제플린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명동에서만 겨우 구할수있었던 오리지널전축판은 1만원을 넘었다. 라이선스판이라는 공식카피판은 (검열에 의해) 이가 빠졌음에도 2000~3000원대. 검열을 피해 막구잡이로 찍어댄 빽판이 1장당 400원. 청계천에서 살 수있었다. 하지만 조악한 품질로 인해 판이 튀는 것을 감수해야한다. 요즘 400원이면 DVD-R 고급제품 1장 충분히 산다.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3. 1974년 이소룡 붐을 아시나요?
팽이치기와 딱지치기,구슬치기 열풍속에 이소룡 바람이 몰아쳤다.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소룡 사진이 담긴 작은 앨범집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동방신기,신화,비 등의 앨범집 그 이상의 열기였다. 종이품질도 인쇄품질도 허접하기 짝이 없었지만 쌍절곤과 함께 이소룡사진집은 당시 소년들의 용돈을 싹쓰리해갔다.
4. 샤프펜슬 압수당했고 쌀밥먹기 힘들었던 것 아시나요?
자동연필(샤프펜슬)조차 국산이 없던 시절. 건설 사파이어 흑진주 등의 나무연필만 사용해야 했다. 샤프란 일본회사가 처음 개발했었던 탓일까. 샤프연필을 쓰면 밀수품쓴다는 꾸지람과 함께 담임선생님이 압수해갈 정도였다.
쌀이 부족했기에 보리혼식 30%까지 강제했다. 쌀밥도시락을 싸왔다가는 혼나기 십상. 심지어 부모님들 호출까지 당했다. 심지어 국수나 빵을 먹어야 하는 분식의 날도 있었으니.
5.60년대 생들의 자동차면허시험을 기억하시나요?
선견지명이 있던 60년대 생들은 이미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로 고교졸업직후부터 자동차면허를 땄다. 필자 역시 대입시험 마친직후인 1982년 1월15일 자동차면허를 취득했다. 대입과목에 공업(자동차구조)이란 과목이 있어 학과시험은 식은죽 먹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심판관들의 시선과 감각에 의해 당락이 좌우됐다. 요즘같이 전자동 투명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뇌물이 오간 것은 물론. 사회문제가 되자 운전시험방식이 달라졌다. 뒷좌석에 다음 차례 면허수험생을 태우고 시험을 치러야했다. 뇌물주고 받는지 감시하라는 것이었나 보다.
6.남녀7세부동석을 적극 실천했던 그 시절아시나요?
국민학교 3학년까지 남년혼성반편성이었다. 4학년올라가면서 남과 녀는 따로 반편성했다. 어떤 학교에선 5학년때부터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예술학교로 진학하면서 남녀합반에 적응하느라 무척 고생해야 했다.
7.웃찻사의 대선배 '웃으면 복이 와요'를 아시나요?
지금 생각하면 왜 웃었는지 모를 그런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땐 정말 재미있었다.
8.붉은악마 월드컵? 박스컵(박정희대통령컵 축구대회)을 아시나요?
월드컵 진출이 번번이 좌절되면서 한국축구는 동남아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태국 버마 인도네이시아 대만 등을 불러 박스컵을 치렀다.
버마가 가장 어려운 난적이었다.
9.영화 친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눈물이 나셨나요?
그 영화의 배경은 60년대생들의 이야기. 특히 애인에게 고백을 하기위해 라디오방송국에 엽서를 보냈던 시절. 문자메시지는 커녕 e메일,미니홈피도 없던 시절이야기입니다. 대신 파이롯트 만년필에 잉크를 가득 넣어 편지를 쓰던 때였죠. 그러다 밤세우며 편지지 한묶음 다 날려 다음날 다시 .....
10. 초고속으로 군대가는 방법을 아시나요?
대학시절이었던 80년대 초반. 군사독재가 서슬퍼런 시절.
데모를 주동하면 감옥에 갔지만 데모에 단순가담만해도 일주일이내에 전방에 소총병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2학년 말에 그렇게 끌려갔던 친구를 졸업후 입대한뒤 부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필자는 이등병. 그는 제대말년 병장이었다.
-- 생각나는 대로 계속 채워가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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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무선리모콘 없는 흑백TV를 아시나요?
집집마다 TV는 커녕 마을하나에 TV한대에도 감사했다.
1973년 32년전이다. 금성 흑백TV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국민학교(요즘 초등학교 ) 4학년때다. 그전까지는 만화가게에서 동네아이들하고 옹기종기 모여 TV를 봐야했다. 당시 인기TV만화 프로그램은 황금박쥐,아톰,요괴인간 등등 모두 일본만화였다고 후일 들었다.
2. 400원짜리 전축판을 기억하시나요?
중1때 입학선물로 받은 천일사의 스테레오 카세트 레코더. 4만8000원. 요즘에는 줘도 사양할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물론 아버지 전축에서 녹음한 테이프가 약간. 대부분은 FM라디오를 녹음해 들었다. 처음에는 진추하의 원서머나이트로 시작했지만 아바, 존덴버,이글스,에어로스미스,비지스,레드제플린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명동에서만 겨우 구할수있었던 오리지널전축판은 1만원을 넘었다. 라이선스판이라는 공식카피판은 (검열에 의해) 이가 빠졌음에도 2000~3000원대. 검열을 피해 막구잡이로 찍어댄 빽판이 1장당 400원. 청계천에서 살 수있었다. 하지만 조악한 품질로 인해 판이 튀는 것을 감수해야한다. 요즘 400원이면 DVD-R 고급제품 1장 충분히 산다.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3. 1974년 이소룡 붐을 아시나요?
팽이치기와 딱지치기,구슬치기 열풍속에 이소룡 바람이 몰아쳤다.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소룡 사진이 담긴 작은 앨범집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동방신기,신화,비 등의 앨범집 그 이상의 열기였다. 종이품질도 인쇄품질도 허접하기 짝이 없었지만 쌍절곤과 함께 이소룡사진집은 당시 소년들의 용돈을 싹쓰리해갔다.
4. 샤프펜슬 압수당했고 쌀밥먹기 힘들었던 것 아시나요?
자동연필(샤프펜슬)조차 국산이 없던 시절. 건설 사파이어 흑진주 등의 나무연필만 사용해야 했다. 샤프란 일본회사가 처음 개발했었던 탓일까. 샤프연필을 쓰면 밀수품쓴다는 꾸지람과 함께 담임선생님이 압수해갈 정도였다.
쌀이 부족했기에 보리혼식 30%까지 강제했다. 쌀밥도시락을 싸왔다가는 혼나기 십상. 심지어 부모님들 호출까지 당했다. 심지어 국수나 빵을 먹어야 하는 분식의 날도 있었으니.
5.60년대 생들의 자동차면허시험을 기억하시나요?
선견지명이 있던 60년대 생들은 이미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로 고교졸업직후부터 자동차면허를 땄다. 필자 역시 대입시험 마친직후인 1982년 1월15일 자동차면허를 취득했다. 대입과목에 공업(자동차구조)이란 과목이 있어 학과시험은 식은죽 먹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심판관들의 시선과 감각에 의해 당락이 좌우됐다. 요즘같이 전자동 투명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뇌물이 오간 것은 물론. 사회문제가 되자 운전시험방식이 달라졌다. 뒷좌석에 다음 차례 면허수험생을 태우고 시험을 치러야했다. 뇌물주고 받는지 감시하라는 것이었나 보다.
6.남녀7세부동석을 적극 실천했던 그 시절아시나요?
국민학교 3학년까지 남년혼성반편성이었다. 4학년올라가면서 남과 녀는 따로 반편성했다. 어떤 학교에선 5학년때부터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예술학교로 진학하면서 남녀합반에 적응하느라 무척 고생해야 했다.
7.웃찻사의 대선배 '웃으면 복이 와요'를 아시나요?
지금 생각하면 왜 웃었는지 모를 그런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땐 정말 재미있었다.
8.붉은악마 월드컵? 박스컵(박정희대통령컵 축구대회)을 아시나요?
월드컵 진출이 번번이 좌절되면서 한국축구는 동남아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태국 버마 인도네이시아 대만 등을 불러 박스컵을 치렀다.
버마가 가장 어려운 난적이었다.
9.영화 친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눈물이 나셨나요?
그 영화의 배경은 60년대생들의 이야기. 특히 애인에게 고백을 하기위해 라디오방송국에 엽서를 보냈던 시절. 문자메시지는 커녕 e메일,미니홈피도 없던 시절이야기입니다. 대신 파이롯트 만년필에 잉크를 가득 넣어 편지를 쓰던 때였죠. 그러다 밤세우며 편지지 한묶음 다 날려 다음날 다시 .....
10. 초고속으로 군대가는 방법을 아시나요?
대학시절이었던 80년대 초반. 군사독재가 서슬퍼런 시절.
데모를 주동하면 감옥에 갔지만 데모에 단순가담만해도 일주일이내에 전방에 소총병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2학년 말에 그렇게 끌려갔던 친구를 졸업후 입대한뒤 부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필자는 이등병. 그는 제대말년 병장이었다.
-- 생각나는 대로 계속 채워가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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